연예인 게임으로 비유한 대한민국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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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180회 작성일 22-01-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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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jpeg 프리드리히 2세 때문에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1.jpg 프리드리히 2세 때문에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마리아 테레지아


아버지가 죽고 합스부르크를 상속받은 마리아 테레지아에겐 곧바로 무서운 시련이 기다리고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가 바로 살리카법과 몇백년전 케케묵은 조약을 들먹이면서 침공해왔고

프로이센이 먼저 선빵을 치자 서로 눈치만 보고있던 프랑스,스페인,바이에른,작센까지 일제히 오스트리아를 침공해왔다.

당시 허약한 오스트리아군은 패전을 거듭했고 반대진영은 급기야 마리아 테레지아의 누드 화보를 전유럽에 유포시켰다.

당연히 마리아 테레지아는 극대노했지만 프리드리히에게 일방적으로 패배만 거듭하던 전시상황에 그녀에게 이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내부에서도 신하와 귀족들도 마리아 테레지아를 은근 불신하는 기미를 보였고 보헤미아 지방의 귀족들은 노골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카를 알브레히트를 지들 멋대로 보헤미아 국왕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카를 알브레히트는 끝내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을 제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된다.

원래부터 반항적이었던 헝가리도 반란을 준비하고있었다.

껍데기만 거대했지 내부는 아주 씹창이 날대로 나있던 오스트리아는 이렇게 갈갈히 찢겨질 위기에 놓였다.


이제 23살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겐 정말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수있을까 싶을정도로 무겁고 엄청난 극한의 시련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프리드리히 2세의 침공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겉으로는 드러내지않았지만 이때 극심한 정신적 쇼크를 받았고 이때부터 우울증에 시달리게된다.

유럽의 수많은 나라들이 자신의 상속을 반대하고 다굴하는 현실적 상황에 통치자의 입장을 혐오하게되어 왕위를 포기하고 내려오려는 생각도 했었을 정도였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최측근들과 더불어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노력했지만 그리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1740년 말 실바-타루카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녀는 "난 육체적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병자다. 그리고 난 가축이다." 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우울증을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출산을 한 후와 왕위계승전쟁에서 오스트리아군이 프리드리히에게 깨질때마다 그녀의 우울증은 주변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심해지곤했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사랑했던 남편이 젊은 여자들과 애정행각을 벌일때와 남편이 갑자기 사망했을때 나타난 우울증의 강도는 매우 우려할 정도였다.


이 시기 실바-타루카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녀는 "나는 살아오면서 현재와 같은 나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이성적이 아닌 습관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무능력의 소유자인 것 같다." 라고 자조했다.



-- 출처 :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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