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공홈] 미켈 아르테타: 에밀 스미스 로우는 건강 문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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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241회 작성일 22-01-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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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 https://www.fmkorea.com/4216527607

보스턴 : https://www.fmkorea.com/4217113890

뉴욕 양키스 : https://www.fmkorea.com/4217551395

토론토 : https://www.fmkorea.com/4218294439

탬파베이 : https://www.fmkorea.com/4218851831


애틀랜타 : https://www.fmkorea.com/4220066776



장문이라 똥 싸면서 읽기 좋은 글입니다







image.png 뉴욕 메츠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1986년을 위한 원기옥


1983년 6월 15일


메츠 get 키스 에르난데스


세인트루이스 get 닐 앨런, 릭 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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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10일


메츠 get 개리 카터


몬트리올 get 휴비 브룩스, 마이크 피츠제럴드, 험 위닝엄, 플로이드 유먼스






image.png 뉴욕 메츠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톰 시버]


1983년 당시 메츠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왕년의 에이스 톰 시버는 38살의 노장이었고 타선에선 조지 포스터가 힘내고 있었지만 포스터 역시 전성기가 지난 노장이었습니다. 대럴 스트로베리나 제시 오로코스 같은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팀의 전체적인 기량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1977년부터 83년까지 NL 동부 지구 6개 팀 중 5~6위에 머물렀던 메츠에겐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image.png 뉴욕 메츠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세인트루이스 시절 에르난데스]


그리고 같은 해 세인트루이스의 1루수였던 키스 에르난데스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1루 수비수이자 1979년 MVP였던 에르난데스는 성적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닌, 계약에 대한 불만과 화이티 허조그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고 싶어했습니다. 특히 허조그 감독과의 불화는 갈 수록 심화되어 더이상 공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에르난데스와 허조그 감독 둘 중 누군가는 떠나야 했는데 허조그는 직전 시즌이었던 1982년에 세인트루이스를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올려놨던 감독이었습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는 1983년 시즌 중반, 메츠로부터 투수 유망주 2명을 받고 에르난데스를 트레이드 시켰습니다.










image.png 뉴욕 메츠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에르난데스가 합류한 메츠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에르난데스는 메츠에 합류한 직후부터 훌륭한 성적을 냈고 메츠에서의 풀타임 첫 해였던 1984년, MVP 2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했습니다. 거기에 19살의 드와이트 구든이 이끄는 젊고 훌륭한 선발진이 더해지며 메츠는 직전 시즌 꼴찌에서 단숨에 2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제 메츠에게는 정말 한 끗이 남았었습니다. 바로 포수였는데, 당시 메츠의 주전 포수였던 마이크 피츠제럴드는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선수였습니다. 공수에서 힘이 될 베테랑 포수만 있다면 메츠의 대권 도전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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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시절 카터]


같은 시기, 몬트리올의 주전 포수였던 개리 카터는 연봉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수에서 완벽했던 당대 최고의 포수 카터는 1974년 데뷔 후 1984년까지 11시즌 동안 몬트리올에서만 뛰며 말그대로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연봉 문제로 심각한 언해피 상태였고 카터의 요구를 맞춰줄 수 없던 몬트리올은 결국 메츠로부터 4명의 선수를 받고 카터를 트레이드 시켰습니다.









image.png 뉴욕 메츠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2년 동안 공수에서 기량을 갖추면서도 팀을 이끌 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한 메츠는 확실한 강팀으로 변모했습니다. 에르난데스와 카터가 함께 뛴 첫 시즌이었던 1985년, 98승 64패로 1위 세인트루이스에 3경기 차 뒤진 2위를 기록한 메츠는 1986년 108승을 거두며 2위 필라델피아와 무려 21.5게임 차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습니다. NLCS에서 마이크 스캇과 놀란 라이언이 이끄는 휴스턴을 4:2로 꺾고 월드 시리즈로 진출했고 월드 시리즈에서는 로저 클레멘스와 웨이드 보그스가 이끄는 보스턴을 꺾고 17년 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메츠에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베테랑 에르난데스와 카터가 더해지며 일궈낸 우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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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22일


뉴욕 메츠 get 마이크 피아자


플로리다 말린스 get 프레스턴 윌슨, 에드 야널, 제프 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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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의 주전 포수이자 최고 타자였던 마이크 피아자는 놀라운 타자였습니다. 한 시즌에 40홈런을 치면서 타율 3할 6푼을 치는 선수. 그게 바로 피아자였습니다. 포수로서 자니 벤치가 40홈런을 기록한 적도 있고 조 토레가 3할 6푼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이 둘을 동시에 기록한 선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피아자는 그것을 해내는 선수였습니다. 그만큼 피아자의 가치는 높았고 많은 연봉을 요구했습니다. 다저스로서는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였고 FA를 앞둔 피아자를 트레이드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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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구든]

1998년 메츠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 팀을 이끌던 젊은 에이스 드와이트 구든이 무너지면서 90년대 초반엔 배리 본즈의 피츠버그, 중반부터는 그렉 매덕스의 애틀랜타에게 밀리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다시 성적을 끌어올렸지만 애틀랜타의 벽을 넘기엔 부족했습니다. 팀을 한단계 더 도약시킬 '크랙'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메츠의 눈에 20대 후반의 젊은 포수이자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던 피아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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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시절 피아자]


1998년 시즌 초중반, 피아자는 결국 다저스를 떠나 플로리다로 트레이드 됐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구단이었던 플로리다는 애초부터 피아자를 오래 데려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 플로리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메츠는 특급 유망주였던 프레스턴 윌슨을 포함한 트레이드를 통해 피아자를 데려오는데 성공했습니다. 








image.png 뉴욕 메츠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피아자는 메츠로 이적하자마자 대단한 성적을 냈습니다. 1998년 메츠에서의 109경기 동안 23홈런을 쳤고 타율 0.348, OPS는 1.024였습니다. 메츠 소속으로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간 평균 0.302 - 0.375 - 0.576, 37홈런 107타점을 기록한 피아자는 메츠의 독보적인 최고 타자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매년 올스타와 실버 슬러거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image.png 뉴욕 메츠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특히 메츠 소속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00년엔 메츠를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에서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에게 패배했지만 NLCS와 월드 시리즈에서 팀 내 주축 타자로 좋은 성적을 올렸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서브웨이 시리즈'를 만드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같은 지구 애틀랜타에게 한 없이 밀리며 어려움을 겪던 시절, 마이크 피아자는 메츠의 대표 선수였고 메츠 팬들이 가장 사랑한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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