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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111회 작성일 22-01-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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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문과 전혀 관련 없는 미사 집전 장면입니다.>



김XX(이하 김처사)는 내 아버지의 친구로 80년대 후반에 유수의 가톨릭 신학대학을 다니던 전도유망한 신학생이었다. 김처사의 친가는 조선이 개항되기 전부터도 산속에서 박해를 피해 숯을 구우며 신앙공동체를 세웠다던 독실한 가톨릭교도들이었다고 한다. 외가 또한 가톨릭이었으나, 외가의 증조할머니께서 무당이었다가 무속을 버리고 천주교에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김처사는 6학년(신학대는 대학원 과정이 합쳐져있다고 한다)에 부제품을 받았다. 그는 겸손하고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덕에 다른 사제들에게 촉망받는 신학생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악마가 그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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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경건해야만 하는 가톨릭 신학대의 기숙사에 악귀의 농간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악몽뿐이었다고 한다. 어릴적에 잠시 본 적 있었던 수라도 속의 마귀들과 염라대왕이 그의 꿈속에 나타나 잠을 방해했다. 처음에는 단지 불편한 정도 뿐이었으나, 나중에는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으면 한숨도 잠들지 못하는 수준으로 악몽은 심해졌다.


김처사는 주임신부들에게 이 문제를 상담했다. 사제 서품을 받으려는 신학생들이 고립된 삶 속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일은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임 신부는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한편 정신과 상담또한 추천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김처사가 가는 곳에는 한기가 따라오고, 기숙사 방에는 여름에도 서리가 내렸다. 김처사는 항상 오한과 식은땀에 시달렸고, 누군가 그에게 손을 뻗을 때마다 베인 상처가 생겨 피를 흘렸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입에서는 기이한 방언이 흘러나왔다. 그 내용은 천박하고 상스러운 욕설부터 주변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예언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김처사의 동기 하나가 그의 예언대로 계단에서 굴러 다리가 부러지거나, 물건이 하늘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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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처사는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을 찾았지만, 귀신들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결국 그는 수행을 더 할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신학생이 신병을 앓는 경우는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신학교의 신부들은 교구에 구마의식을 요청했지만, 구마의식의 요청 허가 자체가 까다롭기에 그가 실제로 구마의식을 받았는지, 허가는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김처사의 기도는 주님께 닿지 않았다. 결국 모든 방법이 실패하고, 더이상 사목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그는 신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주임 신부들과 신학생들은 김 처사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배웅하였지만, 바뀌는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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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김처사'라고 불렀다. 인왕산 자락에 암자(겸 카페라고 한다)를 세우고 은거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당이 된 이후에도 신학교때처럼 경건한 삶을 살았고, 점을 보는걸 업으로 삼거나 복채를 받으며 먹고살지 않았고, 가끔 천기에 대해 말해도 그것으로 대가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한때 걸었던 신부의 길에 대한 애잔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왜 인왕산 자락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냐 물어보면 단지 '인왕산 자락에 있어야 귀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였다.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실때면 


'욥과 달리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험을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다.'

'정말로 신실한 사람들이었던 다른 신학생들이랑은 다르게 내가 마귀의 시험 앞에서 약했다.'


라고 한탄할 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미사를 보는 신도이다.


그런 김처사가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오직 힘든 사람을 도울때 뿐이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사기를 당할 뻔한 친구에게


 '그 중계업자가 사람 깨나 억울하게 만들었다고 그놈때문에 자살해 죽은 귀신들이 말하니 조심해라.'


고 조언해서 사기를 피하게 도와주거나, 친구의 딸이 정신질환이 있어 치료를 받아야하는 사람임에도 무당이 신병이 있다며 우겨 돈을 뜯어가려 하자 


'그 무당한테 달라붙은 잡귀도 무당이 하는 소리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를 뀌고 있다. 네 딸은 무당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친구의 아내가 무당에게 완전히 속아 김처사와 친구를 욕하며 내림굿을 안받으면 신병으로 딸이 죽는다고 아득바득 우기자 김처사는 친구의 아내를 설득하며 간곡하게 전했다.


'형수님, 그 신내림이라는거 저도 겪어봤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나을 수 있는 병인데도 한 아이의 인생을 버리는것과, 도저히 선택하고 싶지 않아도 귀신들이 부르는 것은 확연히 다른 이치입니다. 저는 형수님의 따님이 저 같은 삶을 사는것을 바라지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정신병은 병식만 있고 약만 잘 먹으면 됩니다. 제발 그런 선무당에 기대지 마세요.'



김처사의 설득에 결국 친구의 아내또한 마음을 내려놓고 딸을 제대로된 병원에 보냈고, 결국 딸은 완치는 아니여도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을만큼 건강해졌다고 한다. 



김처사는 굿이나 제사를 매우 싫어했지만, 그런 그가 평생 딱 한번 제사를 해야 한다고 친구에게 우긴 적이 있었다고 한다. 파주에 상가를 차린 한 친구의 지하실에 자꾸 결로가 일어나고 물이 차자, 김처사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면서


'그 집터 주변에 억울하게 가신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을 챙겨드려야 한다. 거기 그렇게 던져져 계실 분들이 아니다.'


고 말하며 어떤 식으로든 무언갈 해야한다고 우겼다고 한다. 김처사는 거의 우격다짐으로 파주의 그 상가에 찾아가 그 인근에서 어떤 의식을 치렀는데, 그 모습이 보통의 무속신앙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톨릭식도 아니었다고 했다).


김처사는 형식적으로라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그 친구에게 택시비를 달라고 보챘다고 한다. 보통때와 다른 김처사의 모습에 친구는 그대로 3만원을 쥐어주었고 처사는 그대로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처사가 이상한 의식을 치루었음에도 결로현상과 누수는 끝나지 않았다.


이후 상가 뒷산에서 6.25 전사자분들의 유해가 발견되었고 그분들의 유해가 제대로 봉헌되고 나서야 그 이상한 결로는 멈추었다. 김처사는


'그분들이 보이고 안타깝게 말을 걸기에 그냥 손을 놓을수가 없어서 뭐라도 해보았는데 그때는 한을 제대로 풀어드리지 못했던것 같다. 나같은  부족한 놈은 신학생도 무당도 제대로 못하는듯 싶다. 그래도 잘 끝나 다행이다. 내 손에 쥐여진 힘이 주님이 내려주신 힘이 아닌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을 돕고 싶었다.'


라고 말하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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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처사는 지금도 인왕산 인근에 살고 있지만, 카페 옆에 선 큰 당산나무를 빼고는 그가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무당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통인동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끔 공짜로 수맥 찾아주고, 나쁜 무당에게 속아서 돈뺏길뻔한 어르신들을 도와준 동내 아저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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