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ㅇㅎ) 승무원 룩북으로 성상품화 논란됐었던 유튜버 근황,JPG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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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104회 작성일 22-01-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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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하기는 태종이 세자로 있던 시절부터 즉위 직후에 이미 경계하고 있었음

일단 장인 민제가 마냥 고고한 선비가 아니라서 


정종 2년 8월 1일 실록기사를 보면 


개국공신이자 문인원로 조준이 한꺼번에 탄핵받은 기사가 있음


태조-태종 두 사람과 사돈관계를 맺었고 1차 왕자의 난 공신이기도 한 이거이가 사병혁파때 버티다가 좌천되었는데 

사병명부를 바치지 않고 버틴 이유가 왕실을 지키려면 사병이 강해야 한다는 조준의 말에 따른 것이라는 탄핵


조준이 사병을 혁파하려는 뜻에 거슬렀다. 즉, 불충한 놈이다란 건데 이 이야기를 대간에 흘린게 간의대부 권진, 

권진에게 이야기를 흘리건 세자 방원의 동서이자 민제의 또 다른 사위 경상감사 조박. 


방원은 죄상 드러나기도 전에 일단 국문부터 하자는 의견을 씹어버리고 

순군만호 윤지에게 외압없이 조사할 것이 강조하는데


민제가 윤지를 슬쩍 불러다가 조준이 나와 하륜을 죽이려 했으니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고 외압을 넣음


다들 짐작 했듯이 조준은 무죄였고, 조박과 권진은 무고죄로 귀양가면서 일단락 되었으나 이때 이미 민씨네 

권력욕에 대한 경계는 품고 있었던걸로 보임


태종 1년 1월 1일에는 상장군 이응(李膺)이 조회때 잘못된 줄에 섰다는 이유로 탄핵이 들어오는데


태종 曰 민무구의 짓이다. 원래 이응이 무구, 무질 통해서 나랑 가까워졌는데 이젠 내 총애가 커지나

모함하려 드는것.


민무구 불러서 꾸짖고 끝내긴 했지만... 과연 그걸로 털어버렸을까?


일단은 태종은 민씨를 계속 두텁게 대함


태종 5년, 12월 13일. 민제의 집에 거동해서 민씨 가족 다 불러놓고 잔치를 벌이면서 동서인 조박에게 

"내가 어렸을 적에 민씨(閔氏)에게 자라나서 은혜와 사랑을 많이 받았다." 며 각별한 위상을 강조함


1년이 지나서 


태종 6년, 12월 10일에는 또 민제의 집에 왕자들까지 데려가서 잔치 열면서 민제를 사부, 민제가 태종에게 선달

이라고 부르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잔치 마치고 궁궐로 가는 태종을 민제가 배웅하는데 

태종이 민제한테 먼저 들어가라고 하네. 


이때 눈치없는 민무질 曰 "아버지가 들어가세요. 아버지가 들어가야 전하께서 말에 타요."


민제는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고 끝까지 공손하게 자세 유지하니 태종 10보쯤 걸어가다 말에 탐.

이때 민제는 이미 태종 심기를 헤아리며 숙이는 중이었고 민무질도 임금 눈치 아예 모르지는 않았음


이 잔치에 앞서서 태종 6년, 8월 16일. 민무질이 스스로 군부에서 물러나길 청했고 이게 받아들여졌거든

이때 민무질이 물러나는걸 반대한  군부 인사들이 유임시켜달라는 상소를 올려서 태종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실수를 한건데 아무튼 스택은 차근차근 적립됨


태종이 6년, 8월 18일. 민무질이 군부에서 물러나겠다고 한지 딱 이틀뒤에 세자(양녕)에게 전위하겠다는 1차 전위소동을 벌였고 

위의 잔치는 4달쯤 뒤에 열렸으니 자기가 사부님하고 부르며 살갑게 대할때 이미 사부님 아들 죽일 생각하면서

빌미만 찾고 있었음


여기에 결정타를 박은게 명과의 국혼 사건


태종 3년에 4월, 명나라 영락제가 보낸 환관 황엄이 태종을 책봉하러 왔을때 영락제 총애받는 황엄을 통해서

명나라 황녀를 세자빈으로 들이자는 의견이 나왔고 태종도 승낙함


지금이야 원간섭기가 치욕이라지만, 이때는 원간섭기의 역사적 경험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람들 인식에 녹아있어서

중국 황녀를 세자빈으로 데여오는게 딱히 부정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


태종도 왕이 길가의 돌맹이 수준이었던 무신집권기 이후 원의 부마가 되어 왕권이 올라간 사례를 복기하고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황엄이 태종 7년에 다시 왔을 땐 일언반구도 안꺼냄.


태종은 만약 말을 먼저 꺼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되려 왕의 권위에 흠집이 감을 고려해 백지화 시키고

자기 과거 동기 김한로 여식으로 확정지음


대신 세자(양녕)를 명에 보내서 영락제를 만나게 하는 방법으로 세자의 권위, 그리고 명의 인증을 받은 후계자를 둔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자 함.


문제는 태종의 뜻에 개기는 애들이 있었다는 거. 


공부, 이현이란 사람들이 이 좋은걸 왜 안하냐며 태종이 이미 결정을 내렸는데도 명으로 떠나는 세자행렬에 소식을 전해

명과의 국혼을 추진하자는 생각을 내놓음


이 사람들은 세자의 외조부 민제를 찾아감. 민제 집안이 잘나갈 뿐 아니라 

민제가 고려때부터 국가의전, 외교업무 책임지던 예조에 있던 사람이라 명나라 사신(태조 3년 10월 9일)으로도 가고

명나라 사신 접대(태종 2년 10월 16일)도 자기 집에서 하는 명나라 통이었거든


이미 태종에게 찍혀 있던 민제, 민무구, 민무질 전부 회피하니까 이현과 공부는 민제의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조박을 찾아감


조박도 동의하니까 이현은 다시 민제를 찾아가서 내가 명나라 사신한테 지난번엔 일이 많아서 잘못 전했고 세자 아직

혼인안했으니 재추진해 달라, 왕 말 무시하고, 명나라 사신한테 거짓을 전하겠다는 간 큰 이야기를 꺼내고


민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럼 하륜 찾아가 보라고 함. 


하륜은 '고려때도 원나라 부마되서 100년간 근심이 없었는데 개꿀'


하면서 다른 정승 성석린과 조영무한테 의견을 물음. 이 둘은 눈치가 있어서 


성석린 : 나는 늙어서 아무것도 몰라

조영무 : 주상전하 결정에 어찌 감히 이의를 다는가?


하면서 빠짐. 아는 사람이 많아지니 결국 예비사돈 김한로에게도 새나가고, 김한로가 이숙번에게 말해서

태종도 알게됨. 태종은 이숙번 불러놓고


"니들 기황후 생각안남? 부부사이 안좋아지면 백성들 더 힘들어질거 모름? 조박 등이 나 무시하고 제멋대로 논하니

내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냐"


하면서 즙을 짜기 시작함. 태종이 엉엉우니 이숙번도 따라서 눈물 쏟음

참 연기잘하는 군신지간이더라.


참고로 이때 태종 무시하고 명 사신에게 거짓말 하겠다고 민제한테 말한 이현은 핫바지가 아님


이방원이 태조 시절 명나라로 주원장 만나고 올때(1394년 6~11월) 함께 했던 대명 외교 전문가. 

이때 동고동락한 경험으로 신임하고 일을 맡겨왔는데 그런 사람이 자기 무시하고 민씨랑 짝짜꿍을 하네.


만약 명나라 황녀가 세자에게 시집오면 이미 세자의 외가인 민씨의 권세는 더욱 강해져서 왕도 통제가 안되는 지경에

이를것이라는 결론이 나옴.


여기에 조박을 불러서 심문을 하니까. 


조박 曰 "저는 민제의 사위로서 부자지간과 같음. 민제도 이번 논의게 깊게 참여했고, 미리 말못한 것도 그거 때문임"


민제방패 쓰면 죄가 덜어질거라 생각했는지 몰라도 민제를 대놓고 거론함.


이쯤되면 민제가 어느정도로 깊게 관여했는지는 상관없는 문제. 

태종한테 개기는 신하들이 방패로 민제를 쓴다. 민씨 가문이라라면 태종의 거슬러도 감당할 수 있다 여기는 거니까. 


태종은 다른 사람은 방면하면서도 민제 사위이자 자기 동서 조박은 귀양보내버림.


여기에 태종이 싫어하는 신하도 민제방패에 기대려고 함.


1차 왕자의 난 공신중에 이무란 신하가 있음. 이 사람 행적을 요약하면 '신뢰 못받는 하륜'


위화도 회군 직후 이인임 잔당으로 지복되었으나 줄 잘타서 회군공신

조선 개국 직후엔 정몽주 세력으로 몰려서 공격받았으나 줄 잘타서 정도전 일파에 연착륙

1차 왕자의 난때 정도전 일파로 몰려 제거대상이었으나 줄 잘타서 무인정사 1등공신


다만 그 과정이 그리 깔끔하지 못했는지 비슷한 줄타기 인생 하륜과 달리 이방원 신뢰는 전혀 못얻음 

앞이랑 뒤에서 말 다른 놈이라도 되게 싫어함


그레도 행정실무 그리고 군사분야에 능력이 탁월해서 계속 중용은 되었는데 군사분야에 오래 박혀있다보니

태종의 곱지 않은 시선도 계속 증가함.


근데 이 사람이 민무질의 처가쪽 인척이라서 


민씨 방패면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보았는지 세자(양녕)의 명나라행에 동행하게 되었을때

민무질 찾아가서 "임금이 나 싫어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청함. 


결국 태종 7년 7월, 태종의 삼촌인 이화가 민씨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고 태종이 1차 선위파동때 민무구 표정을 거론함


이후는 다 아는대로. 


저 이무는 민무구, 민무질 죽이기 전에 먼저 죽여버림.



요약하면 


1).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민씨를 주시하고 있었음


2). 민씨가 권력욕이 없거나 나대지 않았던 게 아님 

 

3). 태종한테 개기는 신하들이 민씨 아래 모임


4). 태종한테 밉보인 신하도 민씨한테 의탁함


5). 태종의 눈물=위험신호



윤정, 태종 7-8년 世子(讓寧大君) 朝見의 정치사적 의미, 역사문화연구 69집, 2019.

박홍규, 방상근,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의 권력정치, 정신문화연구 제29권 3호, 2006.

남지대, 태종은 왜 이무를 죽였을까, 규장각 no.50, 2017.

정혜순, 여말선초 여흥민씨 가문의 동향, 석당논총 vol. 4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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