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생일날 혼술하네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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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06회 작성일 22-01-1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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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숙종45)에 조선통신사로 파견된 신유한(申維翰)은 본인이 통신사 자격으로 일본에 갔다 온 뒤 견문록인 해유록(海游錄)을 지었습니다.


이 기록에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일본의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와 '왜 조선은 우리를 왜(倭)라고 부르는가?'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적어놓았습니다.

조선 통신사와 일본 유학자의 불편한 티키타카




雨森東。嘗於江戶客館。從容謂余曰。吾有所懷。欲乘間言之。日本與貴國。隔海爲隣。信義相孚。敝邦人民。皆知朝鮮國王與寡君敬禮通書。故公私文簿間。必致崇極。而竊觀貴國人所撰文集中語及敝邦者。必稱倭賊蠻酋。醜蔑狼藉。有不忍言者。我文昭王末年。偶見朝鮮文集。每謂群臣曰。豈料朝鮮。侮我至此。憾恨終身。今日諸公可知此意否。辭色甚不平。怒腸漸露。

우삼동(雨森東 , 아메노모리 호슈)이 일찍이 강호(江戶 , 에도 지금의 도쿄)의 객관에서 조용히 나에게 말하길,

"내 소회(所懷)가 있는데, 틈을 타 말하고자 합니다. 일본과 귀국이 바다를 사이로 이웃하고 있고 신의(信義)가 서로 믿음직스러워 폐방(弊邦 , 일본)의 인민이 모두 조선 국왕과 과군(寡君 , 일본 쇼군)이 공경하며 예의를 지켜 국서를 통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공사(公私)의 문부(文簿)에 반드시 높임을 다함이 지극합니다. 그런데 귀국 사람이 지은 문집(文集)을 가만히 보면 폐방에 대하여 반드시 왜적(倭賊 , 왜 도둑놈)이나 蠻酋(만추 , 오랑캐 우두머리)라 일컬으며 멸시하는 것이 낭자하여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있어 우리 문소왕(文昭王 , 도쿠가와 이에노부)께서 말년에 우연히 조선의 문집을 보시고 늘 군신(群臣)에게 이르시길, '어찌 조선이 우리를 업신여김이 이렇게까지일 줄 생각했겠는가.' 하시면서 종신(終身)토록 애달파 하시며 원망하셨는데 오늘날 제공(諸公 , 여러분)이 이 뜻을 알 수 있습니까?" 하며 사색(辭色)이 심히 불평하며 성난 기색이 점점 드러났다.



余曰此自易知。顧貴國不諒耳。君所見我國文集。未知何人所著。然此皆壬辰亂後刊行之文也。平秀吉。爲我國通天之讎。宗社之恥辱。生靈之血肉。實萬世所無之變。爲我國臣民。誰不欲臠而食之。所以上自薦紳。下至廝隷。奴之賊之。語無顧藉。發於文章者。固當如此。至于今日。聖朝仁愛生民。關市通貨。且知日東山河。已無秀吉之遺類。故遣使修睦。國書相望。大小民庶。咸仰德意。豈敢復提宿怨。見諸辭氣。而頃到大坂。目擊平家舊墟。毛髮猶凜凜矣。

내가 말하길,

"이는 자연히 쉬이 알 수 있는 것인데 돌아보건대, 귀국이 살피지 못할 뿐입니다. 그대가 본 우리나라의 문집은 어떤 사람이 지었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이는 모두 임진란 이후에 간행된 글일 것입니다. 평수길(平秀吉 , 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우리나라의 통천(通天)의 원수가 되어 종사(宗社)의 치욕과, 생령(生靈)의 혈육이 실로 만세에 없던 변이니 우리나라의 신민(臣民)이 되어 누가 그 고기를 저며서 먹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위로는 천신(薦紳 , 사대부)부터 아래로 시례(廝隷 , 하인)에 이르기까지 노(奴)다 적(賊)이다 하며 말에 거리낌이 없고 문장에 나타난 것은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성조(聖朝 , 조선)에서 생민을 인애(仁愛)하사, 관시(關市 , 왜인과 교역하는 시장)에 재물을 통하게 하시고 또 일동(日東 , 일본)의 산하에 이미 수길(秀吉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남은 무리가 없음을 알아 그런고로 사신을 보내어 친목을 닦아 국서를 상망(相望)하며  크고 작은 백성들이 모두 덕의(德意)를 우러르니 어찌 감히 묵은 원한을 다시 끄집어내어 말소리에 보이겠습니까? 요사이 대판(大坂 , 오사카)에 다다라 평가(平家 , 도요토미 가)의 옛터를 목격하니 머리털이 꼿꼿해졌습니다." 하니



東曰是則然矣。但今諸從者。有呼敝邦人。必曰倭人。亦非所望。

동(東)이 말하길,

"그것은 그러합니다. 다만 지금 여러 종자(從者)들이 폐방 사람을 부를 때 반드시 왜인이라 하니 또한 바라던 바가 아닙니다.



余曰貴國之有倭名已久。君何所憾。

내가 말하길,

"귀국은 왜(倭)라 불린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애달파 하십니까?"



東曰唐史旣云倭。改國號爲日本。今後則願飭下輩。呼我以日本人可矣。

동(東)이 말하길,

"당사(唐史 , 당나라 역사서)에 이미 이르길, 왜가 국호를 고쳐 일본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금후로 바라건대 아랫사람들에게 우리를 일본인이라 부르도록  바로잡아 주심이 옳습니다."



余又問貴國人呼我曰唐人。題我人筆帖曰唐人筆蹟。亦何意。

내가 또 묻길,

"귀국 사람들은 우리를 당인(唐人 , 당나라 사람)이라 부르고 우리의 필첩(筆帖)을 당인(唐人)의 필적(筆蹟)이라 하는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東曰國令則使稱客人。或稱朝鮮人。而日本大小民俗。自古謂貴國文物。與中華同。故指以唐人。是慕之也。

동(東)이 말하길,

"국령(國令)으로는 객인(客人)이라 일컫고 혹은 조선인이라 일컫게 하였으나 일본의 크고 작은 민속이 예로부터 귀국의 문물이 중화(中華)와 더불어 같다고 하여 이르는 것이니 당인(唐人)이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이 뒤로도 쭉 대화를 나눕니다.






요약



우삼동 : 님들 우리 서로 가깝고 친하게 잘 지내고 있음. 근데 님들 글 보면 왜 우리한테 왜놈, 오랑캐 이렇게 부름? 우리 쇼군사마도 님들 글 보다가 슬퍼했음.



신유한 : ?? 음... 누가 지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거 아마 임란 이후에 지은 걸 거 ㅇㅇ

근데 님들 솔직히 그렇게 불려도 쌈 ㅋㅋ 임란 기억 안 남?

그래도 우리 임금님이 교역도 허용해 주고 서로 친하게 지내려는데 옛날 일은 이제 서로 잊자고 ㅋㅋ

아 도요또미 무덤 갔는데 소름끼치더라 ㅎ



우삼동 : 뭐 그건 그렇지만, 님 아랫사람들은 왜 우리한테 왜인이라 부름?



신유한 : 님들 옛날부터 倭였자너.. 왜 그래



우삼동 : 당나라 역사책에 우리 이름 일본으로 바꾼 거 모름?

앞으로 아랫사람들한테 우리 일본인으로 부르라 하셈



신유한 : 님들 그럼 왜 우리보고 당나라 사람이라 부름?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글도 당나라 사람의 글이라고 부르잖아;;



우삼동 : 아.. 그건...

님들 문화가 중국이랑 동급이라 당나라 사람이라 부르는거 ㅇㅇ

사모한다는 뜻임 ㅇㅋ? 님들 짱짱맨 ㅋㅋ





이렇게 보니 서로 안 고치려고 자존심 부리고  변명만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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